현재 전시
호외요, 호외!
2024년 12월 20일 - 2025년 3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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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2024년 12월 20일(금)—2025년 3월 2일(일)

장소
신문박물관 6층 미디어 라운지

관람 시간
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30분
*일민미술관 전시 중에는 오후 7시까지 운영

휴관일
1.1.(수) / 1.28.(화)—1.30.(목)

주최
신문박물관 PRESSEUM

협조
동아일보, 일민미술관, 한국정책영상자료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광주일보

관장
김태령

기획
장해림, 김현주

기획 보조
고산, 이윤하


교육
여경훈


행정 및 관리
송미선, 윤지수

그래픽 디자인
슈퍼샐러드(SUPERSALADSTUFF)

시공
그라운드57

“호외요, 호외!” 긴급한 소식을 알리며 거리로 뛰쳐나가는 소년들. 서늘한 새벽 공기를 가르고 바쁘게 달음질한다. 방송이 드물고 신문으로 세상의 소식을 만나던 시절, 신문배달원은 고학(苦學)의 상징이자 뉴스의 전령이었다. 소년의 작은 발은 “외딴 섬 먼 바다(절해)부터 높고 가파른 산골(준령)까지”(동아일보 1966년 4월 1일) 전국 방방곡곡에 저널리즘을 전했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독자는 스크린 속 파편적 텍스트에 주목하며, 뉴스 정보를 소비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뉴스의 유통보다는 콘텐츠에 몰입한다. 그러나 미디어의 변천사에서 그 제작 환경이나 물리적 조건만큼 메신저의 역할은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1950~70년대의 신문배달원은 주로 넉넉치 못한 경제 형편을 극복하려 신문사를 찾았다. 운이 좋으면 보급소의 정식 배달원이 되어 숙식을 해결하고 이른 아침부터 시가지를 누볐다. 그렇지 못하면 거리에서 신문을 팔아 모은 동전으로 하루 일당을 삼았다. 특히 호외가 발행된 날에 갓 나온 호외를 한아름 받아들고 뛰며 도시 곳곳에 흥분과 감동을 전하는 것이 이들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성실함의 표상으로서 또 사회에 생기를 불어넣는 숨은 주역으로서 다양한 대중문화 속 클리셰로 남았다.

신문박물관의 2024년 하반기 전시는 신문을 생활 곳곳에 이어주던 신문배달원의 사료를 소개한다. 신문의 대중화와 함께 탄생한 한국 ‘뉴스보이’의 일상을 아카이브 자료, 구술 채록, 사진을 통해 살펴보고, 이들의 일과 일상 그리고 이들이 전달한 정보의 가치를 되짚는다. 이제는 거리에서 사라진 신문 배달 풍경을 재조명함으로써 역동적인 근현대사를 누빈 신문배달원의 모습을 옛 동아일보사 건물로 불러낸다.